천을 끌어안고 빛을 머금은 선(線)

안진국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의미의 논리 (Logique du sens)』(1981)에서 ‘아이온(aiôn)’의 시간에 대해서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나아가는 선형적인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아이온의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과 달리, 현재가 도래하기보다는 현재가 과거와 미래의 양방향으로 무한히 분열되는 시간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 있는 찰나적 순간이다. 사실 그 순간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현재가 되는 순간 바로 과거로 굳어져 버리고 무섭게 미래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2019년 리안갤러리(서울) 첫 전시로 열린 《남춘모》(1.17~3.30)를 보면서 나는 마치 아이온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흐르는 시각적 양식이 나의 감각 속 시간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그곳에서 나의 시선은 이전의 남춘모와 도래할 남춘모로 끝없이 분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남춘모와 도래할 남춘모가 맞닿는 경험을 했다.

 남춘모 1961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구와 독일 쾰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한국과 프랑스, 독일, 미국, 중국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금호미술관, 대구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10년에는 ‘제 10회 하종현 미술상’을, 2012년에는 ‘제 26회 금복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선()의 전통과 천의 표정

 남춘모의 작업은 한마디로 선(線)에 대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은 우리의 전통에 닿아 있다. “우리 전통 그림은 화선지에 먹으로 선을 그어 사물의 형태는 물론, 작품의 원근감까지 다 표현하지요. 컬러가 없어도 먹의 농담으로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무궁무진한 표현력을 함축하고 있는 선이 좋았습니다.”1) “조선시대 화가들은 화선지에 선 몇 개로 난도 치고, 대나무도 그리고 했잖아요. 우리 선조들처럼 선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요.”2) 그를 대표하는 작업은 ‘ㄷ’자 모양의 모듈(module)들을 결합한 작업(이하 ‘ㄷ형 모듈작업’)3) 으로, 이 작업도 단순한 선을 통해 무궁무진한 표현력을 함축하는 시도에서 나왔다고 판단된다. 1998년 시공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인 ㄷ형 모듈작업은 초기에 모듈을 길게 잘라 배열함으로써 직선의 완고함과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사각형에 가까운 일정한 크기의 유닛(unit)들을 모아서 다채로운 선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변주되었다.

작가의 선에 대한 관심은 흑백 선 드로잉의 평면작업에서 일관되게 이어졌지만, 사실 초기 ㄷ형 모듈작업에서는 선보다는 천이 지닌 풍부한 물성, 그 표정을 드러내는 데 더욱 신경 썼던 것으로 보인다. 1997년부터 2007년 이전까지의 ㄷ형 모듈작업은 단색으로 날염되거나 반복된 문양을 가진 천을 그대로 투명 폴리코트(합성수지)로 굳혀 그 모듈들을 아크릴판 위에 붙이는 형식이었다. 이것은 투명 아크릴판을 사용하여 투명성을 극대화하여 천이 가진 빛의 투과성을 그대로 살림으로써 천이 지닌 색채와 표정을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 시기만 해도 작가는 부드럽고 가변적인 천의 물성을 드러내는 입체작업과 화려한 원색의 천을 바닥에 깐 설치작업도 병행했는데, 이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선보다는 천에 대한 실험에 경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07년부터는 ㄷ형 모듈을 캔버스 위에 얹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는 아크릴판으로 제작하니 너무 무거워져 작품을 크게 만들 수 없어서 캔버스로 옮겨 왔다고 술회했다. 이 시기 변화는 단순히 아크릴판에서 캔버스로 옮겨온 것에 머물지 않았다. 염색되지 않고 문양이 없는 광목 천을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아크릴 물감으로 모듈을 채색하면서 회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선의 표현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2007년부터 〈빔(Beam)〉 연작이 시작된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캔버스로 옮겨 오면서 작업에 대한 남춘모의 개념이 명확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빔〉 연작은 이때부터 〈Beam〉, 〈Stroke Beam〉, 〈Spring Beam〉 등의 제목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양상을 보인다.

전통을 재개념화하고 물질의 표현성을 확대한 회화

 이러한 그의 작업은 주요한 표현 개체인 ㄷ형 유닛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며 탄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ㄷ형 유닛을 ‘모듈’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것을 ‘빔(Beam)’이라고 부른다.4) 2007년부터 제목에도 ‘Beam’을 넣기 시작한 것을 보면 이때부터 선과 작업 양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개념적으로 명확한 지향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말들을 종합해보면, 건축용 내장 철골인 ‘빔’이 건축의 기본 뼈대가 되는 것처럼 선의 기본적인 구조적 특징만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읽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빔’이라는 명명이다. 빔은 산업적 구성물의 명칭이다. 남춘모의 작업에서 대부분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떠올리는데, 이것이 단순히 시각적 유사성 때문이라면 올바른 접근이라 할 수 없다. 미니멀리즘에서 중요한 것은 모양보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미니멀리즘은 팝아트와 함께 1950~60년대를 지배하던 ‘후기 모더니즘(Late Modernism)’ 미술의 원리들에 대항하던 ‘사후적(nachträglich)’ 아방가르드의 전형이었다고 평가된다. 그 이유는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산업적 제작 방식을 채택하거나, 일상용 제품을 작품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춘모의 작업이 미니멀리즘의 태도와 연관된 것은 산업적 성격을 지닌 규격화된 재료나 형식이다. ‘빔’이라는 산업적 구성물로 표현 개체를 명명한 점이나 산업적인 표준화를 드러내는 작업 방식은 미니멀리즘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그의 표현 개체를 ‘모듈’이라고 칭한 것도 그의 작업이 산업적 제작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남춘모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가?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서구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이런 태도를 보였던 것은 반(反) 작가적 제작 방식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산업적 제작 방식은 모더니즘 미술가들과 달리 작품을 직접 제작하지 않기 위해서였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을 미술가의 개성이 담긴 유일무이한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더니즘을 지탱하고 있는 미학적 신념들, 특히 ‘작가(author)’의 개념을 무너뜨리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남춘모의 작업은 어떤가? 작가는 2012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면회화 작업을 하다가 입체적인 선 작업을 하면서 공간을 어떤 식으로 형성할 것인가에 집중했지요. 하지만 결국 화가는 회화의 순수성을 향해 돌아가는가 봅니다.”5) 이 말은 강렬한 색상 작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그 속에는 작가의 작업 태도가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이 모더니즘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회화의 순수성’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을 미니멀리즘으로부터 모더니즘으로의 회귀라고 볼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의 작업이 처음부터 줄곧 모더니즘 작업이었다고 본다. 시각적 형식에서 남춘모의 작업이 미니멀리즘 작품과 유사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가 이러한 형식으로 접근한 이유는 한국 전통의 선에 대한 사유와 천의 물성에 대한 실험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작업이 미니멀리즘의 태도에서 시작되었다기보다는, 전통을 재개념화하고 물질의 표현성을 확대하려는 시도에 있었다는 의미다. 그의 작업이 완숙기에 접어들수록 더욱 회화성을 발휘하는 방향을 향해 갔다는 것 또한 작가의 지향점이 드러낸 모습이다.

 남춘모의 작품에는 그 자체가 지닌 울림이 존재한다. 미니멀리즘은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말처럼 물 자체(thing itself)에 집중함으로써 인간이 지닌 지각 체험을 부정했다. 하지만 남춘모의 작품은 ㄷ형 모듈 안을 따라 그은 선이나 강렬한 색상으로 채색한 화면에서 확장된 지각 체험을 하게 된다. 특히 실세계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ㄷ형 모듈로 만들어낸 선의 주변은, 그 요철에 의한 그림자로 인해 다양한 표정의 은은한 계조(gradation)를 만들어 미묘한 지각의 쾌를 경험하게 한다. 또한, 천의 투과성과 그것에 도포된 폴리코트의 투명성이 결합된 ㄷ형 모듈은 빛이 흐르는 공간에서 빛을 머금었다가 은은하게 투과시켜 감상자의 감정선을 흔든다. 이러한 은은한 빛은 마치 한국 전통 가옥의 방문에 붙어있는 창호지를 투과한 빛을 연상시키며, 한국의 정신까지 미묘하게 일깨운다. 결국 남춘모의 작품이 물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지각적 울림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물성의 작업이 아니라 감성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업을 서구의 미니멀리즘에 나란히 놓고 등호(等號)를 붙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아이온의 시간: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과거가 되는 시간

 이제 남춘모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중이다. 나는 《남춘모》 전시장에 있는 선 드로잉 작업을 보며 그것을 명확히 느꼈다. 작가는 1990년대 중반까지 캔버스나 종이에 자연스러우면서도 여백의 미를 살린 선 드로잉을 선보였다. 1996년까지 진행된 초기 선 드로잉 연작 〈Stroke-Line〉에서 그 느낌을 파악할 수 있다. 초기 선 드로잉 작업은 1997년을 기점으로 점차 변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손으로 그린 느낌을 간직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직선 형태를 보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직선과 수평선이 희미하게 그어져 건축 제도지를 연상시키는 종이에 그에 어울릴 법한 얇고 곧고 진한 직선을 그리는 과도기적 작업으로 변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즈음부터는 마커 펜으로 그린 듯 두꺼운 직선을 절제된 형태로 작도하는 작업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시각적으로 미니멀리즘의 형식미를 보여주는 완숙기의 평면 선 드로잉 연작 시대가 열린다. 이러한 평면 선 드로잉은 기계로 그린 듯한 두꺼운 선이나 원형의 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변주되며 〈Stroke-Line〉이나 〈Stroke Beam〉, 〈Beam〉 연작으로 분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캔버스에 손으로 자연스럽게, 혹은 자유스럽게 그리는 방식은 초기 평면 드로잉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작업은 2018년 작품인 〈Stroke 18-02〉와 〈Stroke 18-03〉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울 리안갤러리의 《남춘모》 전시장 입구 맞은편 벽면에 전시되어 있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이 두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이질적으로 존재한다. 이 작품들은 남춘모의 대표적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ㄷ형 모듈작업 형식도 아닐뿐더러, 완숙기의 절제된 기계적 평면 선 드로잉도 아니기 때문이다. 먹선을 다양한 방향으로 자유롭게 그어 놓아 추상적인 동양화 작품처럼 보이는 이 추상표현주의적 작업은 작가가 1996년 이전에 그렸던 초기 선 드로잉 작업을 알지 못하면 낯선 작품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 두 작업이 흥미로운 것은 초기작을 재해석하여 발전시킨 연작이라는 사실이다. 즉, 과거의 재해석이라는 의미다. 과거가 소환된 것이다.

더불어 완만하게 둥근 곡면을 형성한 12개의 개체에 단순한 하나의 수평 직선을 그은 〈Spring-Beam〉(2018) 작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ㄷ형 모듈을 따라 긋던 선과는 달리 넓은 곡면 중앙에 선을 그었다는 차원에서 이 작업은 선 드로잉에 가깝다. 그래서 초기 선 드로잉을 호출하는 느낌이다. 또한 어릴 적 구불구불한 밭고랑을 연상하며 제작했다는 곡선 ㄷ형 모듈작업(〈Spring 0101〉(2019), 〈Beam 0501〉(2019), 〈Spring 0201〉(2019) 등), 혹은 둥글게 말린 선이나 완만한 곡선을 보여주는 작업(2017년부터 선보인 〈Spring Beam〉 연작)은 그 자유로운 선의 느낌이 초기 선 드로잉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 현재는 비껴가고 과거와 미래가, 이전 의 남춘모와 도래할 남춘모가 무한히 분화되면서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결국 맞닿는다. 작가의 완숙기로 평가할 수 있는 직선은 기계적 직선이다. 하지만 작가는 기계적인 직선의 미래를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초기 선 드로잉(과거)에서 찾는다. 결국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과거가 된다. 이것은 과거와 미래가 맞닿게 시간이 휘는 방식이다. 과거와 미래가 맞닿은 원형의 시간성이다. 어쩌면 이 시간성을 거대한 원형 작품 〈Spring-Beam〉(2017)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작업의 선은 시작과 끝이 있지만, 이 작업의 선은 시작과 끝이 없다. 이어져 있다. 들뢰즈의 아이온의 시간이 니체의 영원회귀와 연결되고, 이것은 동양의 순환적 시간과 연결된다. 이 시간성이 나타내는 것은 원형이다. 그렇다면 혹시 작가는 2017년부터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미래에 붙이는 원형의 시간성을 연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2017년부터 그는 미래를 과거에서 끌어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남춘모의 미래가 어떻게 과거와 맞닿는지 연구하는 것은 그의 작업세계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 남춘모, "전원 속 예술가들. 15 : 화가 남춘모", 『영남일보』, 2012. 6. 19.
2 남춘모, "어머니가 어른거린다면…고향 밭고랑처럼 푸근한 부조회화를: 서울 리안갤러리 개인전 남춘모 작가 인터뷰" , 『국민일보』 , 2019. 2. 6.
3 남춘모의 대표작업인 ‘ㄷ형 모듈작업’은 천을 일정한 폭으로 길게 잘라 긴 나무막대기 위에 고정하고, 묽게 희석한 투명 폴리코트(합성수지)를 반복적으로 발라 건조한 후, 이를 떼어내 ㄷ자 홈이 위로 향하도록 다양하게 배열하여 캔버스(초기에는 아크릴판) 위에 고정하는 방식의 작업이다.
4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김선희와 남춘모 작가와의 인터뷰 중 : "선의 탐구, 빛의 시간", 『조선일보 Style』, 2014. 11. 15.
5 남춘모, 「전원 속 예술가들. 15 : 화가 남춘모」, 앞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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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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