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Thomas Illmaier

The Field is Tilled.

Nam Tchun-Mo presents his Stroke Lines in the major marketplaces of the world where art meets demand and exposure. Going from Cologne over to Karlsruhe and on to San Fransisco, a stop in Melbourne, not far from Shanghai--art knows absolutely no boundaries in the globalized world. Art is sought after--but what else remains to be seen?

Michael Burges, who is most familiar with the art and spirituality of Asia, who himself is a painter, and who holds German newspapers in suspense, finds the new work of Nam Tchun-Mo "quite alright". It is of benefit, he says, that Mr. Nam has freed himself from "Tachiste rubbage", as today isn't so much about "grand Solipsist gestures of post-war self-discovery, but about the diffusion of material and spiritual knowledge". That's a good starting point. Nam says of his own work that it reflects the "spiritual reality of the industrial world". This interests journalists, for that which is open to philosophical discussion can also be written about.

Nam Tchun-Mo began his career traditionally, as well an academically-educated painter should. His first works, female nudes, bear the strong influence of Cézanne and a very concrete, earthy physicality. His subsequent phase of dissolution produced works that are not well known. In Germany in the nineties Nam's exhibition of his works at the Galerie Epikur in Wuppertal represented a climax. It was here that he developed the "Tachist rubbage" that the unflattering Burges once fussed over. What Burges at the time did not see is the primal force and gesture of the work, how form is affixed with a tension that asserts itself in and permeates a diffuse, pictorial periphery. Not much later, Nam Tchun-Mo's work would transform. First, the form would free itself from, and then grow in importance over the pictorial surroundings of the painting itself. One could imagine a skeletonization, in an operational, picturesque and even medical action, if things had indeed stayed that way. Elements of this remain prevalent today, at least so far as his sketches are concerned. He next introduced, to our surprise, his Stroke Lines.

At first glance, these Acts, tucked into boxes, not as stylized lines and grooves, appear from the bird's eye view as plowed furrows. Using an encaustic technique, they are turned into three-dimensional projections joined by a thin mesh arched outwards, deepened again in the rhythmic fashion of the tilled field, furrow by furrow, line by line, finely drawn strokes, tactile up to the edges where the furrows are brought up to a line that isn't too perfect, at least not so much that the handwork of the artist--the Golden Line--doesn't reveal itself.

This allows the line to appear gentle, yet at the same time inexorably severe in terms of its rigid seriality. This makes for a good appearance; warm red, yellow, and ocher tones, but also green and even light violet, the natural purple tones speak to the observer. The three-dimensional form catches or disrupts light in the speckled, almost transparent material--especially spectacular radiating in the sunlight.

In order to not merely be pleased by the art of Nam Tchun-Mo, but to in fact understand it, one must accompany the artist out of the museum, out into the open field, and preferably into one of these Stroke Lines of man-made ruin.

Abandoned homes, shelters of concrete, stone, in their barrenness, places that are disgustingly lonely. In these desolate zones, Stroke Lines truly come to being; not so much that they make an art venue out of ruins left behind (which they in fact do), but they place the divine principle, the plow furrows, in the midst of a civilization that has been destroyed by humans. This is the real alternative world, the spiritual reality of the technological world. There is an old Native American saying that after humankind fells all of its forests, finally, it realizes that money cannot be eaten. To this extent, Nam Tchun-Mo's images, especially his Stroke Lines, are reminders and admonitions of what should be valued most in life. Bread is holy, land is sacred--how else are we to survive?

Insofar, Nam Tchun-Mo is superior to Burges, Burens, and all other Western artists who run down the paths to God's gates, if they think they can create a new entity of art through the natural sciences and mysticism. This theme is ancient. But the fact that the artist wants and must show us the farmer's field as a work of art--that is new. Lines and geometry of the images are adapted to nature; its waves, valleys, mountains, the stylized farmer's field brought into the living room, abstract and three-dimensional, as an idea, an aim, and a wish, that cannot replace true nature but can, for those of us estranged from nature, remind what the divine principal really is and what it can realize. The prelude to a new spirituality, an art that makes its way around the world and stirs up a new faith. Therein rises the ancient Buddha, saying, "In a cluster of cities, I rediscovered an old path, the path to knowledge, enlightenment, and liberation. 

The art of Nam Tchun-Mo would like to share this idea with its audience. It does not seek merely to please, for it seeks deeper purchase. This is the way of the old path, where enlightened ones have always trodden. The field is tilled.


Thomas Illmaier,

February 2007

앵커 9

토마스 일마이어

밭이 경작되다.

 남춘모는 전 세계 미술시장에 그의 스트로크라인을 보여 주고 있다. 쾰른에서 칼스루에를 거쳐 센프란시스코, 멜보른을 들러 상하이에 이르기 까지 그의 미술은 전 세계적으로 한계가 없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어쩌면 예술의 세계에서 다 보지 못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독일에서 동양인의 미술과 정신성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그리고 독일문예계를 긴장하게 하는 화가, 미햐엘 부르그스는 남춘모의 새로운 것들에 대해 말하기를 "그의 작업은 아주 잘 정돈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추상적 관념에서 조금 더 해방된다면 좋겠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대상의 관철과 정신적 통찰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좋은 출발점이다. 그는 덧붙여 “남춘모는 자신의 작업에서 미술의 산업화된 세계의 정신적 실체성을 잘 반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기자들에게 철학적 사색을 하게하고 글을 적는데 있어서는 그들에게 흥미꺼리를 주게 된다.

 그는 전통적으로 교육받은 화가처럼 아주 고전적으로 시작했다. 그의 첫 작업 여성 누드는 토속적 세잔의 그림에서처럼 아주 정확한 신체성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해결의 단계가 연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90년대 독일의 부퍼탈에 있는 에피쿠르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앞서 부르그스가 언급했던 그 회화의 추상관념을 그는 발전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부르그스가 그의 작업에서 보지 못했던 것은, 화면 안에서 분산되면서도, 회화적인 배경을 확보하고 또한 그것을 관철하여 완수한 긴장감 도는 형태의 원동력과 태도이다. 그 후 그의 작업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형태들이 거기서 분리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림 안에서의 회화적 주변 환경보다 스스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가 작업하고 있는 현장에 있다면 골격 만들기 수술이나 회화의 의학적 행위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날까지도 그의 스케치작업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후 남춘모는  놀랍게도 그의 스트로크라인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 밤송이 안에 쌓여진 이"것" 들은 첫눈에 단순한 선이 아닌 것임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위에서 내려다 본 주름진 형태나 밭고랑과 흡사해 보인다. 그것은 가공의 한 종류로 3차원으로 접어 접합시킨 얇은 천을 아치형으로 만들어 다시 도랑을 깊게 파고 그렇게 경작된 밭, 고랑과 고랑, 선과선, 섬세하게 만들어진 획, 가장자리에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주름이 정지 상태로서가 아닌 또 다른 선이 되어 형성되게 하는 방법으로서 다루고 있다. 물론 기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중한 작가의 손에서 나온  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의 손길은 이렇게 만들어진 선을 부드럽게 하고 동시에 가차 없이 엄격하게 나란히 줄 세워진 연속성으로 나타나게 한다. 그것은 아주 아름답게 따뜻한 빨강 노랑 그리고 갈색의 색상을 만든다. 하지만 녹색과 밝은 보라, 자연스러운 분홍 톤 역시 관객을 매료시킨다. 3차원의 형상을 통해 그 빛은, 특히 자연광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바로 옆의 투명한 색 반점의 천을 굴절시키거나 균형 잡아 준다.

 남춘모의 미술을 알고 싶다면 ,그리고 단지 즐기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스트로크라인의 최선은 실내의 박물관에서 나와 광활한 평야로. 인간이 만들어놓고 떠난 집들의 폐허로, 콘크리트나 돌에 숨어들어 가거나, 궁색한 반감을 주는 외로움으로 작가와 함께 동행 해야만 한다.

 사람이 떠나버린 공간에서 스트로크라인은 정말 감수성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사람들이 떠난 폐허를 예술 공간으로 만들었고 많지는 않지만 역시 신의 섭리로써의 밭고랑은 인간의 손에 의해 파괴된 민가 한가운데에서 그것은 하나의 기술적 세계의 정신적 실제성이다.

 옛 인디언의 "인간이 숲을 벌목 한 후 결국 인간은 그것을 먹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하나의 그런 비슷한 교훈을 남겨준다. 그의 작업, 특히 스트로크라인은 인간의 삶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한 상기와 경고이다. 빵은 신성한 것이다. 밭은 신성한 것이다. 그 외에 어떻게 인간이 생존 할 것인가?

남춘모는 그의 작업으로써 브르그스를 포함한, 이러한 섭리를 믿는 다른 서양의 모두에게 자연과학과 신비성으로 미술에서 하나의 새로운 조화를 이해하고 형성 할 수 있음을 숙고하게 한다. 화가가 우리에게 밭을 보여 주고자 함,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그 주제는 태고적 이유에서 출발한다. 조화로운 자연의 그림, 파동, 구릉, 산 ,양식화된 경작지를 마치 거실로 가지고 온 듯한 선들과 기하학, 그것은 예술작품으로써 새롭게 재창조된 것이다. 추상적이고 3차원적인 이념, 그 목표와 진정한 자연을 대체 할 수 없는 이 바램은 하지만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무엇이 진정 신의 원리인지, 그리고 그것을 야기 시킬 수 있음을 상기하게 한다. 새로운 정신의 발단으로써의 그의 예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믿음을 주고 있다. 그는 "나는 도시의 미로에서 하나의 인지, 깨달음, 해방의 오래된 길을 재발견했다." 라고 말하면서 고대 불교이념을 상기시키게 했다.

 그의 작업은 관객과 함께 그것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는 그저 만족하려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예술가의 자세로 아주 깊게 숙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 이 오래된 길은 예전부터 어떻게  그가 깨달음의 길을 걸었는지를 인지하게 한다. 

오늘도 여전히 밭은 경작되고 있다.


토마스 일마이어,

2007년 2월

bottom of page